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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시사

감정노동 고도화사회

by 갤둔조이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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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감정조차 일이 되는 기분이다”

요즘엔 가만히 있는 것도 감정노동이다. 무슨 말을 하든 조심스럽고, 아무 말도 안 하면 또 왜 그러냐는 눈빛을 받는다. 직장에서만 그랬던 줄 알았는데, 이제는 SNS에서도, 단톡방에서도, 심지어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누군가의 감정에 ‘알맞게’ 반응해야 한다. 누가 속상한 얘기를 꺼내면 적절한 위로를 해야 하고, 뉴스에 슬픈 소식이 뜨면 함께 분노하거나 침통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아니면 ‘공감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감정을 맞춰주고 반응할수록 나는 점점 더 무표정해진다는 것이다. 감정이 진심이 아니라, 의무가 될 때 사람은 피로해진다. 그건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다. 뭔가를 자꾸 빼앗기고 있는 기분이다. 나답게 반응할 수 있는 자유, 아무 말 없이 있어도 되는 권리, 그리고 무언가에 공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그게 다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감정노동”이란 말을 콜센터 직원이나 서비스직 종사자에게만 썼다. 고객이 화를 내면 웃으면서 받아주고, 속은 부글부글해도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야 하는 직업적인 역할. 그런데 지금은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감정노동자가 된 것 같다. 회의할 때는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해야 하고, 팀원에게 피드백 줄 때는 ‘상처받지 않게’ 말하는 법을 고민한다. 나도 후배들에게 조심해서 말하려고 하는데, 가끔은 말 한 마디 하기도 이렇게 피곤할 일이었나 싶다. SNS에서도 누가 슬픈 일 올리면 “너무 안타깝다”, “힘내” 같은 말을 붙여야 할 것 같다. 가끔은 진심이 아니라, 그냥 그 상황에 적절한 반응을 입력하는 기분이다. 반대로 내가 힘들다고 말했을 때, 누구는 너무 과하게 반응하고, 누구는 아무 말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느 쪽도 별로 위로가 안 된다. 아마도 나도, 그들도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다. 진짜 감정보다, 반응의 규칙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아무 말도 없이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사람이 더 고맙다. 말보다 느낌, 표정보다 존재. 감정이 다시 감정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아주 드물다.

 

물론 누군가에게 예의 있게 말하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는 건 중요하다. 그건 배려이고, 성숙한 사회의 기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배려하는 척’에 능숙해지고, 진심을 숨기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다정한데, 속으론 피곤하고, 말은 따뜻한데 마음은 닫혀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말수를 줄이고, 표정을 관리하고, 감정을 숨긴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공감 피로라는 게 꼭 ‘너무 많이 공감해서’가 아니라, 공감하는 척만 하다가 결국 감정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감정이란 게 ‘느껴야 하는 게 아니라, 잘 표현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쁜 감정은 감추고, 좋은 감정만 정제해서 내보이는 것. 이게 당연한 예의처럼 돼버렸고, 그 예의가 너무 무겁다.

 

 

나는 이제, 그냥 사람이 사람답게 반응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누군가 화나면 화날 수도 있고, 무표정이면 피곤한 걸 수도 있고, 아무 말이 없어도 그건 그 사람의 방식일 수 있다. 감정을 표준화하고, 반응을 정답처럼 요구하는 문화는 결국 감정을 앗아가는 문화다. 감정노동이 꼭 서비스직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지금 어떤 식으로든 탈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감이 많아졌는데, 이상하게 외롭고, 말이 많아졌는데, 이상하게 말할 곳이 없다. 그게 요즘 우리의 마음 같기도 하다. 감정을 지키고 싶다면, 감정의 모양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냥 서로 다르게 느끼는 걸 허락해줘야 한다.
말보다 마음, 반응보다 존재.
공감이란 결국 그런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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